아내가 채식을 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우리 사이의 경계에는 늘 꽃이 있어 그 구획을 획정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아내가 채식을 하기 전까지'라는 단서에서 우리 사이의 경계가 얼마나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지 말해주고 있다. '아내'라는 깊은 정서적, 법적 유대를 형성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내'의 특별함을 알아채지 못했다. ㅡ그러므로 '유대'라는 단어가 합당한가에 대한 시비의 여지가 있음을 인정한다. ㅡ 특별하지 않다고 믿은 사람에게서 발견한 특별함으로 인해 '나'는 새로움에 또다른 매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함으로 인해 매력이 사라져 버렸다.
이후 '아내'는 결코 '나'에게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자신의 어릴적 트라우마에 대한 극복에 매몰된 채 주변을 방치시킨다. 여기엔 더이상 '우리'는 없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본성이 드러난다. 삶의 전환점을, 혹은 삶의 방향성을 찾는 데에 있어 우리를 살필 겨를이 없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기적 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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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무섭지 않아요........ 무서워하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주변을 물리치고 자신에게 매몰되어 자신을 관찰한다. 완전한 채식을 통한 해독, 혹은 치유의 세계로. 그것은 육식에서 온 트라우마일 수 있으며, 과거에 대한 거부이며, 현실에 대한 저항이며, 미래에 대한 다짐일 것이다. 그리고 그 치열한 치유의 과정에서 윤리적 잣대는 무의미하다. 오히려 자신을 거꾸로 세워 손을 뿌리로 다리는 가지로 뻗어 올리는 반전이 그것들을 조롱거리로 만들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녀는 더이상 무서워하지 않는다. 자신의 모습을, 과거를.
그녀가 받은 상처와 고통을 사이코드라마처럼 펼쳐놓은 일련의 과정에서 그녀에게 어떠한 수긍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더이상 무섭다고 하지 않은 그녀의 상황에도 박수를 쳐 줄 수 없기도 하다. 그녀가 주변과 소통을 닫은 이유가 그녀에게 횡포를 부린 것들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왜곡된 전치일 뿐이기 때문이다. 방어기제의 오작동. 어릴적 아버지로 인한 트라우마를 지금에 와서 남편에게 감당하라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한 일이다.
꿈 속에선, 꿈이 전부인 것 같잖아. 하지만 깨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지...... 그러니까, 언젠가 우리가 깨어나면, 그때는......
그 환상의 공간에서 아무도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것이 절체절명의 대단히 거대한 문젯거리로 한 개인의 사고를 틀어막고 있더라도, 한 걸음 물러나서 보면 그것은 매우 단순한 하나의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환상에서 나오지 못한다. 그것은 자신의 고집일 수도 있고, 피하고 싶은 혹은 피해야만 하는 현실도피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공간에 매몰되어 주변을 끌어들인다.
"맞아. 그것이 가장 큰 문제야."
이슈가 정리되고, 프로파간다가 설정이 되면 우리는 하나를 향해 나아간다. 수많은 이슈들이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하나를 향해 집중하도록 여론은 조성되어 나아간다. 거기에 우리는 쉽게 반기를 들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의 통념이며, 보편 타당한 가치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집단적 무의식의 상태로 들어가 버린다.
"정말,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일까?"
채식을 하는 것은 보편성으로 포장된 획일성에 대한 반항일 수 있다. 그것에 대한 저항으로 개인은 왜소해져만 간다. 개인의 상처에 얼마나 깊이 집중하여 공감하고 있는가? 그리고 여기에 곁들여 남성성의 횡포가 도사리고 있다. 헐벗은 처절한 해독 혹은 치유의 과정에 엉뚱한 빨대를 꽂아 욕망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면에서 섹슈얼리즘은 가학이다. 몽고반점의 유아적 상징을 성적 욕망의 상징으로 변질시켜 버리는. 순수의 회복을 위해 드러낸 나체가 욕망의 도구로 인식되어지는.
'아내'는 온전히 치유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주변인들은 여전히 야산을 헤매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치유되고 회복된단 말인가? 우리에게 건네는 말 하나.
조용히, 그녀는 숨을 들이마신다. 활활 타오르는 도로변의 나무들을, 무수한 짐승들처럼 몸을 일으켜 일렁이는 초록빛의 불꽃들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아니, 무엇인가 항의하듯 그녀의 눈길은 어둡고 끈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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