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라고 하면 먼저 생각나는 도시는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난 광주광역시지만,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의 배경이 되는 곳은 '경기도 광주'이다.
1960년대 말 서울시는 서울 시내 무허가 판잣집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철거민들을 경기도 광주에 대단지를 조성하여 집단 이주시키고자 하는 계획을 세웠다. 가구당 20평씩 평당 2,000원에 분양을 해 주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투기 붐이 일어나자 평당 8,000~16,000원에 이르는 땅값을 일시불로 내게 하고, 각종 세금을 부과하는 조세 정책을 폈다. 무허가 판자촌에 살던 사람들에게 이러한 비용을 댈 수 있는 능력이 있을리 만무하였고, 이에 따라 조세 인하와 생계 대책을 촉구하며 비상 대책위원회를 구성한다. 정부와 서울시는 이에 대해 묵살하였으며, 결국 '광주 대단지 사건'이라는 도시 빈민 투쟁이 발생하였다. 약 6시간 가량 광주를 완전히 장악하는 시위를 하고서야 정부는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하였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의 주인공은 이러한 비상대책위의 위원을 맡았지만, 시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거나 투쟁하는 투사형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광주 대단지 사건이 일어나는 날 광주를 몰래 떠나가려다가 시위대에 붙잡혀 온 인물이다. 그러한 사람이 시위의 적극 가담자가 되어 구속되었는가?
그 계기는 시위 과정에서 떨어진 참외 박스에 있었다. 억지로 붙잡혀 온 사람이 시위에 어줍잖게 참여하다가, 쓰러진 삼륜차 한대에서 쏟아진 참외에 몰려드는 시위대가 정신없이 그것을 먹어 치우는 장면을 본 것이다. 인간의 본능이 드러나 굶주린 배를 채우려 달려드는 모습 속에서, 또 그토록 절실한 마음으로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주인공은 그 이상의 무엇도 확인하고자 하지 않았고, 그는 시위에 참여했다.
그는 고백한다. 그 이후의 일은 생각나지 않는다고. 다만 버스 위에 올라 탄 자신이 무언가를 외치고 있는 여러 장의 채증 사진으로 구속이 되었다고만 고백했다. 그리고 그는 석방 이후에도 삼엄한 감시 속에서 살아가며, 열 켤레의 구두에만 집착하여 자존심을 세우는 인물로만 침잠해 간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70년대의 지식인이 어떻게 사회와의 갈등을 빚었으며 양심적 행동의 결과가 권력에 의해 어떻게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소시민의 모습을 잘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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